[문화 산책] 그림값과 이름값
미술에 관한 기사가 신문의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에 실리는 일은 매우 드물다. 유명한 작품의 도난 사건, 가짜그림(위작) 소동, 조수를 써도 되느냐 아니냐… 그런 따위의 기사가 흥미 위주로 가끔 실리는 정도다. 가장 많이 실리는 것은 역시 그림값에 관한 기사다. 아무개 화백의 작품이 경매에서 얼마에 팔려,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는 식의 기사다. 그런 기사를 읽는 보통사람들의 반응은 그림값이 왜 그렇게 비싸냐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헝겊에다 물감 칠한 건데 뭐가 그리 비싼 거냐? 그림값의 정체가 도대체 뭐냐? 간단히 말해서 비싼 그림값의 정체는 시장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 미술 이외의 모든 예술작품은 많이 팔거나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구조로 유통된다. 베스셀러, 천만관객 영화, 밀리언셀러 음반, 조회수 몇 억… 같은 식이다. 이에 비해 미술은 단 한 점을 놓고 많은 사람이 서로 사려고 몰려들기 때문에 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판화나 사진처럼 복제가 가능한 분야는 제외) 투자나 투기 세력이 끼어들면 가격이 수직상승하고, 일단 올라가면 내려오지 않는다. (미술시장에 관심이 있는 분에게는 도널드 톰슨 저 ‘은밀한 갤러리’라는 책을 권한다. ‘경제학자이자 미술품 컬렉터가 밝히는 현대미술의 은밀한 세계’라는 설명이 붙은 이 책은 현대미술을 움직이는 작가와 경매, 갤러리의 실체를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그림값의 형성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지만 상당 부분 작가의 이름값에 좌우된다.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는 기준 같은 것은 애당초 있을 수 없으므로 작가의 지명도에 기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유명해진 작가의 작품은 형편없는 졸작이라도 비싼 값에 팔린다. 유명 작가의 위작 소동이 일어나고, 이름 난 인기 연예인의 그림이 비싸게 거래되는 것도 다 그런 까닭이다. 이름값은 이런저런 형태로 작용한다. 얼마 전 미국 미술계에 한 사람의 화가가 혜성처럼 등장하여 화제를 모았다. 단 한 번도 전시회를 가진 일이 없고, 평생 미술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그야말로 ‘생짜’ 신인인데, 데뷔 전시회에서 회화 대작은 50만 달러, 드로잉 한 장에 7만5000달러를 호가하는 대단한 대접을 누렸다. 이 ‘천재 신인(?)’의 이름은 헌터 바이든(51세),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아픈 손가락’으로 불리는 그 유명한 ‘골치덩어리’ 아드님이시다. 그의 파격적인 그림값이 작품성이나 예술적 가치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 작품값의 대부분은 ‘현직’ 대통령의 이름값이라는 건 누가 봐도 뻔히 보인다. 그러니 미국 정계와 화단이 온통 시끄러웠다. 한국에서도 그림이 정치에 악용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제법 일어난다. 미술작품이 비자금 마련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뇌물로 상납되기도 하고, 대통령 후보의 부인이 과거에 기획했던 전시회에 후원자가 너무 몰렸다고 시비가 되고, 대통령 아들이 작품 창작 지원금을 많이 받았다고 구설에 오르는 식이다. 모르긴 해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비화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술작품을 작가의 명성이나 작품값, 영향력 등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감상하는 길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내가 보기에 좋고, 내 마음에 드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라는 배짱을 가지고 그림 앞에 당당히 서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렵다. 역설적인 명답 하나 소개한다. “내 돈 주고 사고 싶은 작품이 내게는 가장 좋은 작품이다.” 그것 참 더럽게 역설적이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